• [신안] 압해도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댓글투어
  • 09.01.20 15:01:10
  • 추천 : 0
  • 조회: 105328

 압해도

 

 

 

압해면과 재경압해향우회에서는 학교리 소재 군립도서관내 노향림 시비(詩碑)를 건립 하였는데, 이것은 섬 지방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시비로 압해도의 자랑거리 중 하나이다.

흔히 여느 관광지를 둘러보듯 건성으로 지나치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섬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압해도의 이 곳 저 곳을 다니다 보면 섬 특유의 압해도만이 갖는 독특한 정서를 맛볼 수 있다.

우리나라 서남단 다도해 중에서 목포와 가장 가까운 섬인 압해도는 시내버스처럼 철부도선이 자주 운항하여 신안의 다른 여느 섬보다 육지와 가깝지만 섬이기에 육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취를 느낄 수 있으며, 동쪽으로 바다 건너 무안군 삼향면과 청계면, 서쪽으로는 암태면, 남쪽은 해남군 화원면, 그리고 북쪽은 지도읍과 이웃하고 있다. 유인도 7개, 무인도 71개의 크고 작은 78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면적은 63.9㎢이고 해안선은 190.2km나 된다.

평야지대와 원예 시설하우스가 많고 농산물이 풍부하며, 배, 사과, 포도, 양다래 등의 과일은 그 맛이 탁월하여 수출도 하고 있으며, 수산업은 해태양식업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압해도는 역사 문화유적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동서리 도창마을에는 높이 4m, 둘레 3m의 대형 선돌이 남아 있는데, 연대는 알 수 없으며 ‘송장수 지팡이' 또는 선돌이라 불리고 있다.

옛날에 송장수가 무술을 연마하던 중 휘하에 있는 한 병사가 죽어 석관에 그의 시신과 무기를 넣고 매장한 뒤 그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이 선돌을 세웠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고이리에 있는 왕산성지(고이산성)는 전설에 의하면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던 9○○○ 이후에 축조한 성이라고 전하나 정사의 사료에 의하면 대체로 고려 이전의 삼한시대 또는 후삼국시대의 성으로 추정되는데, 현존하는 성축의 길이는 1,000m 정도이며 대부분 붕괴되어 있다. 왕산성의 높이는 1.5m, 폭 3m 정도로 자연석과 잡석을 이용하여 쌓았다. 송공산 정상에도 고려 이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송공산성지가 있다. 가룡리에는 1904년에 배화주 씨가 이 곳에 들려 산수가 좋고 경치가 수려하여 불심을 널리 전파하고자 중건한 신안의 전통사찰 제50호인 금산사가 있다.

압해도는 신안의 수많은 섬들과 목포 사이에 있어 개펄과 물골이 많아서 갯것이 흔하며, 낚시가 잘 되는 곳이 많다. 특히, 복룡리 앞바다(나룻갓)는 접은 물길에 들고 섬이 큰 물때에 따라 농어, 숭어 등이 지나가는 길목이라 낚시가 잘 되고, 기름진 뻘에서 먹이를 찾는 고기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잡히는 고기와는 전혀 다른 맛이 난다.

해산물로는 낙지, 운저리, 굴, 꼬막, 해태와 감태, 서렁게, 농게 등이 있는데 뻘에서 나기 때문에 맛이 기막히며, 또한 압해도의 황토와 기후조건의 조화로 들판에서 나는 배, 포도, 단감, 수박 등은 당도가 매우 높고, 고구마, 감자, 마늘, 양다래 등도 압해도의 특산물이다.

특 산  물  : 압해배(미국 수출), 압해포도, 단감, 황토돼지, 토종돼티, 돌김, 
                세발낙지, 보리새우(오돌이), 숭어 등
문의안내 : 압해면사무소 (☏061-271-0512)
 
 
 
 
 
우리나라 서남단 다도해 중에서 목포와 가장 가까운 섬인 압해도는 시내버스처럼 철부도선이 자주 운항하여 신안의 다른 여느 섬보다 육지와 가깝지만 섬이기에 육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취를 느낄 수 있으며, 동쪽으로 바다 건너 무안군 삼향면과 청계면, 서쪽으로는 암태면, 남쪽은 해남군 화원면, 그리고 북쪽은 지도읍과 이웃하고 있다. 유인도 7개, 무인도 71개의 크고 작은 78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면적은 63.9㎢이고 해안선은 190.2km나 된다.
 
 
갯벌
 
전남 신안군 압해도(면)는 우리나라 섬 가운데 가장 풍성한 갯벌을 두르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예부터 낙지, 짱뚱어, 숭어, 농어 같은 갯것이 많이 나는 것으로 이름높다. 특히 낙지는 다른 곳의 낙지에 비해 색깔과 맛이 전혀 다르다.
이곳의 낙지는 '뻘낙지'라고 해서 색깔이 꼭 갯벌을 닮았다.
남쪽 바다에서 나는 낙지는 바위틈에 살아서인지 색깔이 불그죽죽하다.
특히 이곳에서는 '우럭'이라는 조개가 나는데, 이 조개는 기름기가 있는 곳에서는 한시도 살지 못하는것으로 압해도가 아직까지 청정해역임을 말해준다.
 
 
군립도서관(노향림시비)
 
그리움이 없는 사람은 압해도를 보지 못하네'
시인 노향림이 어린 시절, 목포시 산정동 야산 기슭에서 건너편 압해도를 바라 보며 느꼈던 그 섬에 가고 싶은 무한한 동경을 주제로 쓴 60여편의 압해도 연작시집의 제목이다.

노향림 시인 연혁 :
1942년 전남 해남에서 출생하여 중앙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70년 <월간문학> 시 부문 신인상에 당선하여 문단에 데뷔하게 되었으며,
1987년 대한민국 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연습기를띄우고>,<눈이 오지 않는 나라>가 있다.
 
 
금산사
 
임진왜란 이전의 기록은 모두 소실되어 [삼국유사]나 [삼국사기]등을 인용하여 사적기가 만들어졌다. 금산사의 창건은 599년 (백제 법왕1)에 왕의 자복사찰로 세워진 것이라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지금까지 전하는 바로는 진표가 762년(신라 경덕왕21)부터 766년(신라 혜공왕2)까지 4년에 걸쳐 중건하였으며, 1069(문종23) 혜덕왕사가 대가람으로 재청하고, 그 남쪽에 광교원이라는 대사구를 증설하여 창건이래 가장 큰 규모의 대도량이 되었다.
 
 
동서리 선돌
 
연대는 알 수 없으며 '송장수 지팡이'또는 선돌이라 불리고 있다.
옛날 송장수가 무술을 연마하던 중 휘하에 있는 한 병사가 죽어 석관에 그의 시신과 무기를 넣고 매장한 뒤 그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이 선돌을 세웠다고 전해지고 있다.
 
 
송공산 성지
 
송공산 정상에 축조된 석상이다. 축조시기는 고려 이전이었을 것으로 전해오나 정확한 축성 연대는 알 수 없다.
정상에 소형 석루와 우물 1기가 있는 송공산성은 구전에 의하면 삼한 이전에 설치한 산성지라 전해오나 자세히 알 수 없다.
1255년 몽고병이 내습했을 때 이 성터에서 대적했다는 기록이 동국병감에 기록되어 있다.
Tags :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글쓰기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